PHAIDROS 동탄 파이드로스 수학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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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쌤의 교육일기

생각의 오류 속에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은 칠흑 같은 밤바다를 홀로 항해하는 어부의 심정이다.

​ 초등 부모님은 "억지로 시키면 아이가 공부에 질려버릴까 걱정되요." "너무 느슨하면 공부 습관이 안잡힐까 걱정되요." 고등 부모님은 "어렸을 때 너무 억지로 시켰더니 아이가 공부와 담을 쌓아버렸다." "지금까지 믿고 내버려두었더니 이제와서 공부를 해보려해도 따라갈 수가 없다." 자주 언급되는 상반되는 고민이다. ​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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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오류 속에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은 칠흑 같은 밤바다를 홀로 항해하는 어부의 심정이다.

초등 부모님은

"억지로 시키면 아이가 공부에 질려버릴까 걱정되요."

"너무 느슨하면 공부 습관이 안잡힐까 걱정되요."

고등 부모님은

"어렸을 때 너무 억지로 시켰더니 아이가 공부와 담을 쌓아버렸다."

"지금까지 믿고 내버려두었더니 이제와서 공부를 해보려해도 따라갈 수가 없다."

자주 언급되는 상반되는 고민이다.

문제점의 원인을 쉽게 찾아 속단하고 있다.

더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위해 수학 공부의 본연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

수학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20년 수학 교육을 업(業)으로 살아보니 어려운 질문이다.

자율성이 공부의 본질이다 인식하던 때가 있었다.

이때는 스파르타식 강제성을 내세우는 학원을 보면 제정신인가 생각했다.

자율성만 옳고 강제성은 틀렸을까?

아니다. 자율적인 학생도 강제력이 부과된 시스템에 스스로 들어가서 더 높은 성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예전에 한 가지 솔루션이 마음에 꽂히면 그것만 정답이라 생각되었다.

다른 생각은 강하게 부정했다.

그러나, 반대의 주장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례를 목격하기도 한다

사람을 가르치는 데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공부하는 과정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진단에 맞는 처방이 필요하다.

나는 어떻게 수학 공부를 시작했나?

내 학창 시절을 반추해 본다.

처음 중학교에 들어와서 서로간 서먹 서먹해서

선생님이 임시 반장을 정해주고 대부분 형식적인 투표를 거치고 그대로 반장이 되었다.

나도 그렇게 반장이 되었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학교에서 무섭기로 가장 악명이 높은 유경렬 수학 선생님이셨다.

수학 시간마다 선생님은

"날이면 날마다 돌아오는 5분 테스트 시간이다. 책 집어넣고 시험 준비해라"

평균 아래는 찰진 매질이다.

반장이라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 선생님은 남촌동의 허름한 신혼집에서 빠듯한 살림살이를 꾸리셨다.

퇴근 후에 야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셨다.

선생님이 무섭기도 했지만 내 존경의 거목이셨다.

나에게 중학교 수학은 자신 있는 과목이 아니었다.

첫 중간고사 수학 성적은 60점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로 부르셨다.

"넌 우리 반 반장인데 수학 점수가 그래서 쓰겠냐? 내일부터 수학반에 참여해라"

수학반은 전교에서 수학 성적이 우수한 60명을 선발해서

방과 후에 특별 지도하는 학교의 선별 집단이었다.

시골 학교였고 동네에 제대로 된 학원도 없어 학교에서 의욕적을 꾸린 엘리트 집단이었다.

그래도 공부할 기회를 주신 은혜로 알고 열심히 공부했다.

다른 학생들이 방과 후에 수학반은 수학선생님 교실에 모여서

4시부터 6,7시까지 두세 시간을 공부했다. 매주 금요일은 2시간 동안 수학 시험을 치렀다.

선생님의 강의보다 스스로 수학 문제집을 공부하는 시간이 많았다.

인수분해를 스스로 공부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공식을 배우고 문제를 푼 것이 아니었다.

공식 없이 인수분해를 해결했다.

개념을 배우고 문제 유형을 익히고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통해 문제를 먼저 접하고 개념과 유형을 나중에 깨우쳤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2~3시간 동안 붙잡고 있는 것은 지독히 고통스럽다.

중1 때 모인 60명은 중3 졸업할 때 11명으로 줄었다.

3년 동안 날마다 2~3시간 동안 수학 문제와 씨름한 11명의

입학 실적도 우수했다.

중학교 졸업 후에 대부분 과기대와 서울대에 들어갔다.

나는 수학으로 먹고살고 있으니

가장 큰 덕을 보았다고 볼 수 있다.

방치와 자율을 구분해야 하고

내제적 강제성과 외제적 강제성도 구분해야 한다.

학생 마음에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동기가 나올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 없다.

꿈과 목표가 높은 곳에 있으면 그만큼의 과정이 필요하다.


수학 공부는 고통과 고난이다.

수학은 간결하고 정돈된 풀이가 전부가 아니다.

모범 답안의 깔끔한 풀이는 수학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그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숨는 99% 시도와 시행착오가 수학의 본질에 가깝다.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묘사하면

수많은 생각의 오류 더미 속에 허우적거리는 나의 모습이다.

마치 칠흑 같은 밤바다를 헤매고 있는 무력하고 쓸쓸한 뱃사람이 정확한 비유다.

도저히 답에 도달할 것 같지 않다.

내가 적고 있는 풀이가 논리적으로 맞는가 불안하다.

겨울바다를 주로 그린 프리드리히 작품을 보면 수학 문제를 풀 때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 방랑자 1818년 작품

오류의 바다에 혼자 던져진 모습이 대부분의 수학 공부에 대한 적합한 표현이다.

대부분 답이 나올 거라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답을 찾았을 때 기쁨은 더욱 큰 것이다.

세계적인 수학자 오카 기요시는 이렇게 비유했다.

"수학의 발견의 주는 기쁨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나비를 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들판을 헤매다가 나무에 앉은 아름다운 나비와 마침내 맞닥뜨렸을 때의 황홀한 느낌과 비슷하다!"

오카 기요시 교수의 학창 시절 일화가 발견의 기쁨을 적절하게 보여준다.

두 시간에 걸려 어려운 문제를 제대로 풀었다는 확신에 자신도 모르게 "해냈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감독관으로 들어와 있던 야스다 선생과 주위 학생들이 모두 오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오카는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게 웃었다.

연필을 집어 들고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공원으로 달려가 해가 저물 때까지 벤치에 누워 있었다.

그 뒤의 시험을 몽땅 내팽개친 채였다.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인생에서 수학의 발견의 기쁨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수학자의 공부 중에서

제 수학 공부 오답노트입니다. 수학공부는 모눈형태가 유용합니다.

지난 4달동안 책상에 쌓인 제 오답노트입니다.

40년 동안 수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도 수학은 이제 쉽다고 말할 대상이 아니다.

수학 문제를 풀면서 고통의 순간을 매일 직면한다.

우리가 한참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을때

내가 걸어온 길을 볼때는

고통의 순간들이 보이지 않는다.

뿌듯함과 성장만 보일 뿐이다.

다시 돌아가보자.

공부를 자율에 둘 것인가 강제로 이끌 것인가

어느 경우든지

고통과 고난을 공부에서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선 받아들여야 한다.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도 공부에서 겪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강제로 공부량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도

공부에서 느끼는 고통이 더 힘든 것이다.

공부에서 학생이 주도력을 놓지 않도록 돕는 것이 가장 좋다.

공부는 만두처럼 질리지 않는다.

공부를 안하고 있기 때문에 질리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대충 생각없이 암기식으로 풀다가 한계에 부딪친 것이다.

제대로 공부한다면 공부를 많이 해서 질리거나 등을 돌리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자신의 무지와 목두하는 순간에 고통과 환희가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