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난 30살 차이다.
내가 50살이니 아버지는 팔십이시다.
부자지간으로 50년이란 교집합 속에 삶을 공유하고 있다.
삶의 유한함을 깨닫는 순간들에는
더 늦기 전에 '잘해드려야 하는데...' 초초함이 밀려온다.
막내아들과 나는 45살 차이다.
물리적으로 내가 아버지와 지낸 시간들보다 더 긴 시간을 우리는 공유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들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베베궁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길과 시간이 소중한 이유이다.
자전거 뒤에서 한 마디씩 던진다.
"맛있는 거 사줘~"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르라는 말이다.
"지름길로 가자~"
길치인 엄마가 돌아가는 길로 가라는 말이다.
오산천을 넘어가는 다리에서는 물고기 구경에 하염없이 시간을 쏟기도 한다. 40년 전에 내가 아버지의 짐 자전거 뒤에 타고 다닌 오산천 방뚝길이다.
그 시절, 휴일엔 보(保) 막은 곳에서 아버지와 낚시도 했다.
막내와 자전거를 타는 평화로운 시간은 하루 중에 길지 않다.
막내는 동탄 베베궁에서 오후 5시까지 하루를 꽉 채우고 퇴근(?) 하고 나는 그때쯤 학원에 출근해서 아이가 잠든 후에나 퇴근한다. 대부분의 가정집 일상도 비슷하리라.
베베궁 앞에서 어느 어머니가 자전거에서 내리는 현도를 부러운 듯 바라본다.
"와~ 좋겠다"
그분은 아이를 벤츠에 태우고 왔다. 그러나, 분명한 진심이 전해진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오래전에 유행한 에세이처럼 모든 아이 교육을 동탄 베베궁에 맡기고
부모는 부모대로 삶을 살아가고
아이는 아이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평행선 가운데 영속되지 않을 교점들이 우리들의 삶에 방점이 되어 간다.